박항서 베트남 감독 인도네시아 꺾고 신화 창조
베트남의 박항서 감독이 인도네시아를 이겨 신화를 다시 이어받았다.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 중 한 명인 박항서 감독. 당시 스포트라이트는 히딩크 감독, 박지성, 이영표 등 선수들에게 집중됐지만 사실 허정무 감독의 후임으로 거스 히딩크 감독이 국가대표팀 감독에 선임됐을 때 선수들과 감독 사이에서 어머니 역할을 한 게 박항서 코치였다. (히딩크 감독=아빠, 박항서 코치=엄마) 실제로 그런 코치의 노력으로 2002년 월드컵 한국 첫 골의 주인공인 황선홍 선수는 히딩크 감독보다 박항서 코치에게 먼저 달려와 포옹했을 정도다. 이러한 박항서 감독은 이후 한국팀을 거쳐 베트남 축구팀 감독으로 옮기게 되고 이후 베트남 축구는 많은 성장을 하게 된다. 이같은 박항서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 22세 이하 축구대표팀은 10일 오후 9시(한국시간) 필리핀 마닐라 리설 메모리얼 스타디움에서 열리는 2019동남아시안게임 남자축구 결승전에서 인도네시아에 3-0으로 승리, 60년의 한을 풀었다. 오늘 박항서 감독 얘기를 해보자. 박항서 그는 누구인가.박항서 감독은 경신고와 한양대를 거치며 축구와 인연을 맺었다.이후 1981년 제일은행 축구단에 입단해 실업선수로 데뷔한 뒤 곧바로 육군 축구단에서 군복무하고 1984년 럭키금성황소축구단에 입단해 프로에 데뷔한다.1985년 팀의 리그 우승, 1986년 팀의 리그 준우승을 이끌었지만 1988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하며 지도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은퇴한 직후부터 1996년까지 LG에서 트레이너와 코치로 활동했다. 1994년에는 1994년 FIFA 월드컵 미국에 출전하는 국가대표팀 트레이너로 활동하며 김호 감독과 호흡을 맞췄는데, 김호 감독이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창단 감독을 맡으면서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코치로 합류하여 2000년까지 활동하게 된다. 2002 한일 월드컵 때는 수석코치로서 히딩크 감독을 보좌하며 감독과 선수의 가교 역할을 해 한국대표팀 선수단의 전투력을 끌어올리고 월드컵 4강 신화를 쓰기도 했다. 이후 이 같은...